요즘 사람들은 바쁩니다. "어디 가세요?"라는 질문에 "그냥요"라고 답하면 어딘가 부족해 보입니다. 목적이 없는 행동은 의미도 없다고 여겨지는 세상에서, ‘그냥’ 걷는 산책, ‘그냥’ 멍하니 있는 시간은 종종 낭비로 오해받습니다. 그런데 이상하죠. 산책을 다녀오면 기분이 조금 나아지고, 멍하니 있다 보면 막혔던 생각이 풀립니다. 아무 이유 없이 한 행동이 삶에 여백을 주고, 생각을 정리해주고, 감정을 환기시켜 줍니다. 산책과 멍때리기, 이 둘은 의외로 깊은 공통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바로 '무목적'이라는 목적입니다. 오늘은 이 두 행위가 어떻게 우리의 삶에 조용한 변화를 일으키는지, 그 가치를 함께 들여다보려 합니다.
방향은 있지만 목적은 없는 걸음, 산책
산책은 목적이 없는 이동입니다. 정해진 도착지가 없고, 누군가 기다리고 있지도 않으며, 기록할 필요도 없습니다. 빠르게 걷지도 않고, 경쟁하지도 않죠. 그저 한 걸음씩 나아가면서 주변을 바라보고, 마음 가는 대로 길을 틀고, 생각이 흘러가는 대로 따라갑니다. 이처럼 산책은 우리에게 속도보다 리듬을, 결과보다 흐름을 알려줍니다. 누군가에겐 운동이고, 누군가에겐 휴식이지만, 무엇보다 산책은 자기 자신에게로 향하는 여행입니다. 고요한 발걸음 속에서 우리는 세상을 바라보기도 하고, 내면의 소리를 듣기도 합니다. 어느 날은 마감 스트레스 속에서 한 바퀴를 돌고 나면 숨이 좀 트이고, 또 어떤 날은 친구와 아무 말 없이 걸으며 서로를 이해하게 되기도 합니다. 산책은 문제를 해결하진 않지만, 문제와 나 사이의 거리를 넓혀줍니다. 그 거리 덕분에 비로소 생각할 수 있고, 숨 쉴 수 있게 되는 것이죠. 무엇보다 산책은 ‘무언가를 하기 위해 걷는 것’이 아니라, 그저 걷는 것 그 자체가 목적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려줍니다. 이건 우리가 잊기 쉬운 삶의 리듬을 되찾는 일입니다.
멍때리기, 멈춤 속에 흐르는 깊은 움직임
멍때리기는 보기엔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그 속에서 우리의 뇌는 놀라운 작업을 수행합니다. 신경과학에서는 이를 ‘디폴트 모드 네트워크(Default Mode Network)’라고 부르는데, 멍한 상태일 때 뇌는 과거를 되짚고, 미래를 상상하며, 현재를 재해석합니다. 멍때리기는 마치 의식이 잠시 벗어난 구름 위 산책과도 같습니다. 어떤 문제를 깊이 고민했을 때는 오히려 답이 안 보이다가, 멍하니 창밖을 보다 문득 해결책이 떠오른 적이 있지 않으신가요? 이것은 뇌가 무의식적으로 연결망을 다시 짜고, 창의적으로 문제를 재조합한 결과입니다. 또한 멍때리기는 정서적 피로를 회복하는 데도 큰 도움이 됩니다. 무심코 TV를 보거나, 스마트폰을 넘기는 것도 쉬는 것 같지만 실은 끊임없이 자극을 받고 있습니다.
반면 멍때리기는 자극도 반응도 없는 상태, 말 그대로 '쉼표'입니다. 이 쉼표가 일상 속에 있어야만 우리는 정서의 균형을 되찾고, 다시 삶을 밀고 나갈 수 있는 에너지를 얻습니다. 결국 멍때리기는 그냥 멈춰 있는 시간이 아니라, 가장 인간적인 회복의 시간입니다. 기계는 쉴 수 없지만, 우리는 멍할 수 있는 존재이기에 더욱 인간다울 수 있는 것이죠.
무목적의 미학: 오히려 그래서 치유된다
산책도, 멍때리기도 공통적으로 “이걸 왜 해?”라고 묻는 순간 그 의미가 줄어드는 행위입니다. 무언가를 얻기 위해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로 이미 충분한 행위이기 때문입니다. 이 점이 바로 ‘무목적’의 핵심이자 미학입니다. 지금 우리는 너무 많은 목적 속에 살고 있습니다.
걸을 땐 운동 효과를 계산하고, 쉴 땐 얼마나 회복되었는지 체크하며, 멍하니 있는 시간도 ‘마인드풀니스’라는 이름 아래 성과를 요구받습니다. 이럴 때, 목적 없는 행위는 불안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이 시간, 제대로 쓰고 있는 걸까?”라는 질문이 따라붙기 때문이죠.
하지만 산책과 멍때리기는 그런 기준에서 벗어나는 자유를 줍니다. 결과가 없어도, 생산하지 않아도 괜찮은 시간. 삶을 '사는 것'으로 되돌려주는 시간입니다. 우리는 그런 시간 속에서 스스로를 회복하고, 자기 자신과 다시 연결됩니다. 무목적의 시간은 아이들이 공놀이를 하듯, 바람결 따라 흔들리는 풀잎처럼, 그저 살아 있는 존재로서의 나를 되찾게 합니다.
이 단순하지만 중요한 회복의 감각은, 바쁘고 목적이 분명한 삶 속에서는 쉽게 잃어버리기 마련이죠. 그러니 때때로 우리는 이렇게 말해도 괜찮습니다. “그냥 걷고 싶었어요.” “그냥 가만히 있고 싶었어요.” 그 이유 없는 이유가, 삶을 더 깊고 부드럽게 만들어줍니다.
마무리: 의미는 때때로 목적이 없는 곳에서 자란다
산책과 멍때리기는 인간에게 주어진 아주 오래된 본능이자 선물입니다. 이 둘은 아무런 목적 없이 움직이고 멈춤으로써, 우리가 잊고 살았던 것을 되살려 줍니다. 복잡한 현실 속에서 한 걸음 떨어져 삶을 바라보게 하고, 머릿속이 정리되지 않을 때 조용히 다시 나 자신으로 돌아오게 해줍니다. 기술은 빨라지고, 할 일은 많아지고, 세상은 점점 더 목적을 강요합니다.
하지만 삶의 중요한 순간은 항상 느슨함 속에서 자라납니다. 산책과 멍때리기의 시간은 그 여백 속에서 우리에게 이렇게 말하는 듯합니다. “지금 이대로도 괜찮아.” 그 순간, 삶은 조금 더 깊어지고, 우리는 조금 더 부드러워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