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에도 수십 번, 우리는 ‘해야 할 일’의 목록을 들여다본다. 이메일을 확인하고, SNS를 새로고침하고, 잊지 말아야 할 메시지를 떠올리고, 잠깐의 여유조차 ‘생산성’의 틀로 포장한다. 그렇게 하루가 끝나고 나면 뭔가 꽉 찬 것 같은데도, 이상하게도 속은 비어 있는 느낌이 든다. 어느 날 문득, 내 뇌가 과열된 컴퓨터처럼 ‘윙’ 소리를 내는 것만 같았다. ‘이대로 괜찮은 걸까?’ 하는 의문이 들었고, 그 물음은 ‘무언가를 하지 않기’를 시도해보자는 결심으로 이어졌다. 그렇게 시작된 일주일간의 멍때리기 챌린지. 아무 목적 없이, 아무 생각 없이, 단지 존재해보는 시간을 매일 10분씩 갖는 실험이었다. 그 결과는? 단순한 휴식 이상의, 삶을 다시 느끼는 감각의 회복이었다.
1일차~2일차: 멍때리기, 생각보다 어렵다
처음 멍때리기를 시도한 날, 나는 소파에 앉았다. 스마트폰은 멀리 두고, 음악도 없이, 그저 가만히 눈을 감았다. “그냥 있으라니까 쉬운 일이지” 싶었지만, 2분도 안 돼 머릿속이 시끄러워지기 시작했다. 해야 할 일, 미뤄진 약속, 식사 메뉴, 심지어 예전 창피했던 일까지… 내 무의식은 멍을 방해했다.
2일차에는 시계를 들여다보지 않으려고 애썼다. 하지만 머릿속에서 “몇 분 지났지?”라는 질문이 떠오르자 집중은 또 무너졌다. ‘멍때리기’는 아무것도 안 하는 일이 아니라, ‘끊임없이 뭔가를 하려는 습관’과 싸우는 일이었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았다. 오히려 이런 혼란이 ‘멍때리기’가 나에게 꼭 필요하다는 증거 같았다. 아무것도 안 하기가 이렇게 어려운 줄은 몰랐다.
3일차~5일차: 무의식과의 대화가 시작되다
3일째부터 변화가 생겼다. 생각의 파도가 밀려왔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하면서, 그 안에 진짜 내 마음이 들어 있었다.
4일차에는 눈물이 났다. 이유는 잘 모르겠다. 누가 아프다거나 슬픈 기억이 떠오른 것도 아닌데, 그냥 고요한 속에서 마음이 스르르 열리면서 울컥했다.
5일차에는 처음으로 시간 감각을 잊었다. 눈을 감고 있던 사이, 15분이 흘렀다. 그 순간 느낀 건 ‘멍이 곧 명상’이라는 것이다. 차이점이 있다면, 멍에는 아무런 목적도, 방향도, 규칙도 없다는 것. 그런데도 이 느슨함 속에서 나는 오히려 내 안의 소리를 더 정확히 들을 수 있었다. 놀랍게도, 그날 밤엔 오랜만에 악몽 없이 푹 잤다.
6일차~7일차 : 여백 속에서 삶이 숨쉬기 시작하다
6일차에는 멍때리기를 야외에서 해봤다. 강변 벤치에 앉아 햇살과 바람을 느끼며 눈을 감고 있자, 온몸이 자연과 동기화되는 느낌이었다. 새소리, 바람 소리, 자전거 지나가는 소리… 평소라면 소음으로만 들렸을 것들이 이상하게 평화롭게 스며들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모든 감각이 깨어 있었다.
7일차엔 이제 멍때리기가 기다려졌다. 마치 몸과 마음이 그 시간을 ‘회복의 순간’으로 인식한 듯했다. 하루 10분, 아무것도 하지 않는 이 시간이 내 하루의 중심이 되었다. 일은 더 효율적으로 정리되었고, 감정 기복도 줄었다. 뇌가 ‘가볍다’는 느낌이 이런 거구나 싶었다.
마무리: 우리는 원래 이렇게 쉬는 존재였다
우리는 늘 ‘해야 할 일’에 눌려 살아간다. 그래서 가끔은, 아니 자주 ‘하지 않아도 되는 시간’이 필요하다. 멍때리기 챌린지는 단순한 실험이 아니었다. 그것은 ‘멈춤의 용기’이자, 무의식과의 대화이며, 무엇보다도 내 존재를 다시 만나는 여정이었다. 7일의 멍은 나에게 분명한 사실 하나를 알려주었다. 인간은 기계가 아니다. 우리는, 쉬어야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