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따라 머릿속이 너무 조용하다. 분명히 예전에는 번뜩이는 아이디어가 마음속에서 샘솟듯 터져 나왔는데, 지금은 아무리 짜내도 한 방울 나오지 않는다. 마감은 다가오고, 노트북 앞에 앉아도 커서는 깜빡이기만 한다. 어쩌다 우리는 이렇게 고갈된 상태가 되었을까? 창의력은 뭔가를 ‘하는’ 과정에서 생기는 것 같지만, 실은 뭔가를 하지 않을 때, 그 빈 틈에서 피어난다. 그런데 우리는 언제부턴가 그 빈 틈을 불안해하며 끊임없이 뭔가를 채워왔다. 유튜브, 숏폼, 뉴스레터, 생산성 앱… 모든 순간을 의미 있게 만들려고 애쓰는 사이, 뇌는 한 번도 숨을 고르지 못했다. 이럴 때 필요한 건, 아이러니하게도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이다. 그것도 의도적으로, 멍하게. 오늘은 ‘멍 때리기’라는 고요한 습관이 어떻게 다시 우리 안의 창의력을 깨울 수 있는지 이야기해보려 한다.
창의력은 비어 있는 머리에서 시작된다
‘멍때리기’는 현대인의 뇌에 주어지는 드문 휴식이다. 하루 24시간, 우리는 무언가를 끊임없이 보고 듣고 판단하고 결정한다. 정보를 받는 것에 너무 익숙해져, 입력(input) 없이는 존재할 수 없는 존재가 되어버린 것이다. 그런데 진짜 창의는 입력의 끝에 나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정보를 소화하는 시간, 아무것도 하지 않는 그 무심한 상태에서 꽃핀다.
예를 들어보자. 샤워 중에 아이디어가 떠오른 적 있는가? 지하철 창밖을 멍하니 보다 번뜩이는 생각이 든 적은? 이는 뇌가 자동 조정 모드(default mode network)에 들어간 상태이기 때문이다. 이 모드는 우리가 집중하지 않을 때, 과거를 되짚거나 미래를 상상하거나 새로운 연결을 시도한다. 즉, 멍한 상태가 오히려 창의력의 자궁이 되는 셈이다. 반면 우리가 너무 많은 정보를 소비하고 있으면 뇌는 계속해서 ‘반응’만 하게 된다.
텅 빈 상태가 없으니 새로운 조합, 독창적 연결, 나만의 해석이 일어날 틈도 사라진다. 창의력이 사라졌다면, 혹시 멍 때릴 여유도 사라진 건 아닐까?
아이디어의 씨앗은 ‘의미 없음’ 속에 숨어 있다
우리는 종종 ‘시간 낭비’에 민감하다. 무의미한 시간을 죄책감으로 여긴다. 하지만 무의미한 시간, 아무것도 하지 않는 순간이야말로 뇌가 비로소 생각을 시작하는 시간이다. 정리되지 않은 감정들이 정리되고, 묻어두었던 질문들이 떠오르고, 머릿속에서 이리저리 뒹굴던 단편적인 이미지들이 실마리처럼 연결되기 시작한다. 멍 때리기는 ‘기다림의 기술’이다. 즉각적인 성과가 아니라, 내 안에서 천천히 무언가가 싹트기를 기다리는 일. 이를테면 땅속에서 씨앗이 조용히 발아하는 시간과 같다. 보이지 않지만, 분명히 자라고 있는 것. 창의력이란 뭔가를 만들어내는 능력이 아니라, 이미 내 안에 있는 것을 발견하는 감각에 가깝다. 그리고 그 감각은 조용한 시간 속에서 다시 깨어난다.
멍하게 앉아 커피 잔을 바라보는 그 10분이, 어쩌면 내일의 큰 아이디어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멍때리기를 잘하는 법: 창의력을 위한 빈자리 만들기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멍때리기를 할 수 있을까? 사실 이 질문부터가 현대인의 조급함을 드러낸다. 멍 때리기는 ‘잘하는’ 것이 아니다.
그저 ‘하는’ 것이다. 하지만 멍때리기를 돕는 몇 가지 습관은 있다.
- 디지털을 끄는 시간 정하기: 아침에 눈뜨자마자 스마트폰 대신, 창밖을 바라보는 5분을 갖자. 퇴근 후 10분, 방 안의 조용한 공기를 듣는 시간을 가져보자.
- 산책하기 (핸드폰 없이): 발걸음 하나하나에 집중하고, 흘러가는 바람 소리를 들으며 걷다 보면, 어느새 마음도 느긋해진다. 이 ‘걷는 멍’이 의외로 많은 아이디어를 품고 있다.
- 무언가 바라보기: 벽, 구름, 전등, 물잔. 아무 대상이나 괜찮다. 목표 없이 바라보는 연습을 하다 보면, 생각이 하나씩 줄고, 감각이 살아난다.
중요한 건 ‘아무것도 하지 않기’에 익숙해지는 것. 처음엔 허무하고 불안할 수 있다. 하지만 그 빈 시간 안에야말로 진짜 나의 언어, 생각, 창의력이 돌아온다.
마무리: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의 위대함
우리는 자꾸 뭔가를 해야만 의미 있다고 믿는다. 하지만 멈추는 시간,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은 창의력의 숨구멍이자, 마음의 재정비 공간이다. 멍 때리기란, 뇌를 위한 사우나이자 마음을 위한 안식처다. 그동안 창의력을 잃었다고 느꼈다면, 생산성을 의심하기 전에 ‘멍 때리기’를 시도해 보자. 창밖을 멍하니 바라보며 잊고 있던 나의 상상력이 서서히 피어나는 그 순간, 당신은 깨닫게 될 것이다. 모든 위대한 아이디어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에서 출발했다는 사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