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매일 바쁘다. 업무에 치이고, 사람과 부딪히고, 해야 할 일에 밀려 하루를 보낸다. 그렇게 정신없이 흘러간 하루의 끝, 문득 이런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나는 오늘도 나를 모르고 지나쳤다.” 많은 사람들이 ‘자기이해’에 관심을 갖는다. 요즘엔 MBTI, 에니어그램, 퍼스널 컬러처럼 나를 설명해주는 수단도 넘쳐난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정보가 많아질수록 더 헷갈린다. 이게 진짜 나인지, 아니면 만들어진 이미지인지. 우리는 타인의 시선 속에서 나를 해석하고, 성과로 나를 평가하고, 바쁨 속에 나를 놓친다. 이럴 때 가장 필요한 건 생각보다 단순하다. 가만히 있는 시간. 아무것도 하지 않고 멍하니 있는 그 순간. 바로 그 ‘멍때리는 시간’이야말로 진짜 나와 만나는 통로일지도 모른다.
멍때릴 때, 비로소 들리는 마음의 소리
평소 우리는 너무 많은 정보와 자극 속에 살아간다. SNS 피드를 넘기며 타인의 삶을 기웃거리고, 업무 알람과 메시지에 반응하며 하루를 보낸다. 그렇게 늘 바깥의 세계에만 귀를 기울이다 보면, 정작 내 마음은 점점 조용해진다. 혹은, 너무 시끄러워져서 오히려 못 듣게 되기도 한다. 멍때리기는 그 모든 자극의 스위치를 끄고, 잠시 내 안에 머무는 시간이다. 아무 생각이 없는 것 같지만, 실은 아주 중요한 일이 일어나고 있다. 내면의 목소리가 서서히 올라오는 시간. 예를 들어, 멍하니 창밖을 보다 보면 ‘요즘 왜 이렇게 피곤하지?’라는 질문이 불쑥 떠오른다. 그리고 곧바로 ‘아, 나 요즘 진짜 쉬지 못했지’라는 자각이 따라온다. 누가 대신 말해주지 않는 이 한 줄의 깨달음이, 바로 자기이해의 시작이다. 그 깨달음은 가끔은 아프고, 때로는 놀랍지만, 반드시 필요한 순간이다. 우리는 그제서야 스스로를 토닥이거나, 다시 돌볼 용기를 얻는다. 복잡하게 분석하지 않아도 괜찮다. 단지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 속에서, 우리는 조금씩 ‘나를 다시 듣게’ 되는 것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음으로써, 나를 알아가는 법
자기이해는 특별한 경험에서만 생기지 않는다. 오히려 아주 사소한, 의도 없는 순간들 속에서 스며든다. 멍하니 앉아 있다가, 내 표정이 왜 이렇게 굳어 있는지 알게 되고, 멍때리며 걷다가 요즘 자주 떠오르는 생각이 무엇이었는지 정리된다. 이런 순간을 통해 우리는 감정의 습관을 포착할 수 있다. 예컨대, 늘 남을 먼저 걱정하다가 나를 후순위에 두는 버릇. 실패를 과장해서 두려워하는 경향. 타인의 말 한마디에 마음이 요동치는 민감함. 이 모든 건 일상에 파묻혀 있을 땐 잘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멍때리다 보면 이상하게 선명해진다. 바쁘게 움직일 땐 안 보이던 것들이, 조용한 틈에서 떠오르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시간 속에서 우리는 내가 누구인지, 무엇에 취약한지, 또 무엇이 나를 편안하게 하는지를 알아간다. 자기이해는 거창한 성찰이 아니라, 조용히 스스로를 들여다보는 일이다. 그러기 위해 필요한 건 분석도, 글도 아니다. 그저 한 번 멍하게 있는 것.
멍때리기의 기술: 마음이 머무는 연습
멍때리기는 훈련이다. 처음엔 생각보다 어렵다. ‘이 시간에 뭐라도 해야 하는데’, ‘시간 낭비 아냐?’ 같은 불편한 감정이 따라온다. 하지만 이 과정을 지나야만, 우리는 비로소 마음이 쉴 수 있는 공간을 얻게 된다.
먼저, 멍때리기를 위한 시간을 정해보자. 꼭 길 필요는 없다. 하루 5분이면 충분하다. 아침에 창가에 앉아 햇빛을 바라보거나, 잠들기 전 조용한 방 안에서 눈을 감고 있어보자. 휴대폰은 멀리 두는 게 좋다. 디지털 자극은 이 조용한 시간을 방해하기 쉽다.
둘째, 무엇을 하려고 애쓰지 말자. 명상처럼 호흡을 조절하거나, 생각을 지우려고 하면 오히려 더 어렵다. 생각이 오면 그냥 오게 두자. 지나가는 구름처럼 바라만 보자. 판단도, 의미 부여도 하지 말자. 이 시간은 ‘해야 하는 것’이 없는 드문 시간이다.
마지막으로, 멍한 시간을 일상에 녹여보자. 엘리베이터 안에서 핸드폰 대신 바닥을 바라보기, 커피를 마시며 그냥 향을 맡아보기, 지하철에서 이어폰 없이 앉아 있기. 이 짧은 빈틈들이 차곡차곡 쌓이면, 내 마음도 점점 더 잘 들리게 된다. 우리는 바쁜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 끊임없이 움직여왔다. 이제는 잠시 멈추고, 그 움직임 안에 놓쳐버린 나의 마음을 만나야 할 시간이다.
마무리: 멍한 순간이 나를 다시 만나는 시간
‘자기이해’는 멀리 있지 않다. 심리학 책 속에도, 테스트 결과에도 없다. 오히려 가장 깊고 정확한 자기이해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 바로 멍때리는 그 순간 속에 있다. 그 시간엔 정답도 없고, 기대도 없다. 오직 있는 그대로의 나와 마주하는 고요함이 있을 뿐이다. 그리고 그 고요함 속에서 우리는 아주 작지만 확실한 나의 목소리를 듣는다. "나는 지금 괜찮지 않아." "나는 지금 너무 지쳐 있어." "나는 사실, 조금 외로웠어." 이 말들이 나에게서 나왔다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조금 더 단단해진다. 그리고 그게 바로 자기이해의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