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중력이 곧 능력이다.’ 우리는 어릴 때부터 그렇게 배웠다. 공부할 때는 책상 앞에 앉아 한곳만 바라보고, 일할 때는 주변 소음을 차단하며 일에 몰두해야 한다고. 멀티태스킹은 집중력의 적이고, 산만함은 나쁜 습관의 대명사였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오히려 창의적인 생각은 고도의 집중이 아닌, 집중을 잠시 내려놓는 ‘멍한 순간’에서 떠오르지 않았는가? 샤워하다가, 잠들기 전 누워 있다가, 버스 창밖을 멍하니 바라보다가—그때 문득 번뜩이는 아이디어가 떠오른 경험. 그건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다. 이처럼 창의력은 집중에서 비롯되는 게 아니라, 분산된 상태에서 솟구친다. 뇌가 고요하게 떠돌 때, 우리는 가장 창의적인 사람으로 변한다.
‘생각의 틈’이 창의력을 부른다
우리는 늘 ‘무엇을 해야 할지’ 생각하며 살아간다. 매일 아침 알람이 울리면 곧바로 할 일을 정리하고, 머릿속은 업무, 계획, 연락해야 할 사람들로 가득 찬다. 그러다 보면 사고의 흐름이 단선적으로 고정된다. 목적 중심적 사고, 즉 ‘지금 무엇을 해야 하지?’라는 프레임이 창의적인 발상을 막는 것이다. 그런데 멍때리는 시간에는 이런 프레임이 해제된다. 목적 없는 시선, 비워진 마음, 방향을 잃은 사고의 흐름. 그 속에서 뇌는 자유롭게 과거의 기억, 경험, 감정, 상상력을 뒤섞기 시작한다. 마치 무의식의 보물창고에서 하나씩 꺼내듯, 연결되지 않을 것 같은 정보들이 서로 닿으며 창의성이 발화되는 것이다. 실제로 스탠퍼드대의 한 연구에서는 의도적 휴식이나 산만함이 오히려 복잡한 문제 해결에 효과적이라는 결과를 보였다. 이는 아이디어를 짜내려고 안간힘을 쓰기보다, 생각의 끈을 풀어주는 시간이 더 유익하다는 뜻이다. 창의력은 몰아붙일수록 도망가고, 손을 놓아야 다시 돌아오는 고양이 같은 존재니까.
기본모드 네트워크와 창의성의 비밀
과학자들은 우리가 ‘멍때릴 때’ 작동하는 뇌의 상태를 '기본모드 네트워크(Default Mode Network, DMN)'라고 부른다.
이 모드는 우리가 집중하지 않을 때, 외부 자극이 없을 때, 뇌가 내부 세계를 탐색하기 위해 작동하는 시스템이다. 감정을 반추하고, 과거를 떠올리며, 미래를 상상하고, 복잡한 문제를 재해석하는 것이 바로 이때 일어난다. DMN은 창의성의 핵심적인 조건을 제공한다. 비논리적이거나 기존 틀을 벗어난 조합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순간, 즉 남들이 떠올릴 수 없는 연결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유명한 소설가들이 말하는 ‘영감은 산책 중에 온다’거나, 아이디어가 잠들기 직전에 떠오른다는 말은 단지 낭만이 아니다.
이 네트워크는 실제로 우리 뇌가 ‘느슨한 상태에서 활발하게 연결 작업’을 하고 있다는 증거다. 게다가 집중 상태는 보통 뇌의 특정 부위에 에너지를 집중시키지만, 멍때릴 때는 뇌 전반이 비교적 넓게 활성화된다. 즉, ‘넓은 사고’를 위한 필수 조건이다. 제한된 사고에서 벗어나 창의적으로 사고하고 싶은가? 그렇다면 멍때리기를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
‘생산성’이라는 강박에서 벗어날 때 생기는 여백
현대인은 멍한 순간조차 ‘낭비’라고 느낀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게으르다고, 집중하지 않으면 나태하다고 여기는 문화가 너무도 깊게 뿌리내렸다. 그 결과, 잠깐의 멍때리기도 죄책감을 동반한다. 하지만 진짜 창의적인 사람들은 오히려 의도적으로 ‘멍한 시간’을 확보한다.
일부러 창밖을 보며 차를 마시고, 일부러 산책을 하며 핸드폰을 두고 나간다. 그들은 알고 있다. 아이디어는 그럴듯한 PPT 앞이 아니라, 아무것도 없는 공백 속에서 태어난다는 것. 스티브 잡스는 걸으며 회의하는 걸 즐겼고, 아인슈타인은 느긋한 산책 후에 중요한 통찰을 얻곤 했다. 작곡가 쇼팽은 피아노 앞이 아니라 조용한 숲길에서 멜로디를 떠올렸다고 한다. 이들은 모두 창의성을 ‘집중의 산물’이 아닌 ‘여백의 산물’로 보았다. 우리는 ‘무언가 해야 한다’는 압박을 내려놓는 연습이 필요하다.
멍때리기는 그 출발점이 된다. 집중보다 어려운 것은 ‘생각을 멈추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멈춤 속에서 흘러나오는 것이야말로 진짜 나의 아이디어, 나만의 감각일 수 있다.
마무리: 창의력을 원한다면, 잠깐 잊어버려라
아이디어는 좁은 틀 안에서 쥐어짜는 것이 아니라, 넓은 공간에서 피어나는 것이다. 우리가 하루에 10분이라도 멍때릴 수 있다면, 그건 단순한 휴식이 아니라 뇌에게 공간을 내주는 행위다. 집중을 멈추고, 계획을 내려놓고, 모든 생각을 놓아보자. 바로 그 빈틈에서 새로운 연결이 시작된다.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는 시간, 뜬금없이 떠오르는 장면 하나, 이름 모를 감정의 조각들—그 모든 게 창의성의 씨앗이 된다. 그러니 오늘 하루, 일부러라도 멍한 시간을 만들어보자. 집중을 포기하는 순간, 당신의 뇌는 가장 창의적인 모드를 시작할 것이다.